[사회적 오지래퍼] 수호편 1_임재성 변호사

[사회적 오지래퍼] 수호편 1_임재성 변호사

톡톡카페란?제주시커뮤니케이션협력센터가기획하고제주MBC와협력하여TV방송으로편성한토크프로그램이다.움직이는 트레일러 카페를 들고 마을 곳곳을 돌아다니며 주민들의 살아있는 이야기를 나눈 ‘찾아가는 토크 카페’ 시즌2 방송이 돌아왔습니다! 어떤 대가 없이 더 나은 제주를 만들기 위해 참견하는 ‘사회적 참견’을 만나는 시간. 그곳이 어디든 톡톡 카페가 만나러 갑니다.세상에 단 하나뿐인 맞춤형 음료와 훈훈한 재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들어보지 않겠습니까?*8월부터 현재까지 촬영한 현장 인터뷰와 비하인드 스토리가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역사를 지키는 사회적 오지라퍼 임재성 변호사와 학연, 혈연, 지연도 없지만 누구보다 열심히 4·3사건 군사재판 피해자 명예회복을 위해 애쓰는 임재성 변호사를 만났다. 그는 과거 피해를 책임지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 비극적인 과거사 피해자를 돕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미약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누구나 동등하게 싸우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과정이 보장되는 평화로운 사회가 되길 바란다는 그를 만나본다.#4·3사건 #군사재판 #평화로운사회

43군사재판 재심 청구

4·3사건은 제주에서는 잊을 수 없는 상처이다. 4·3사건 중 1948년 1984년에 일어난 군사 재판은 재판이라 부를 수 없는 불법 절차였다. 실제로 재판을 받은 기억이 있는 피해자도 있지만 재판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것도 피해자에게 유죄 무죄를 묻는 절차도 없었다. 군사 재판이란 외모를 갖추고 있지만 법의 이름을 쓴 처형인 폭력이었다. 4·3사건과 관련된 다양한 진상 규명과 명예 회복 절차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재판 피해자의 경우” 잘못된 때문에 재판을 받은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아무도 그들을 보상하는 것을 생각하지 않은. 임·제성 변호사는 4·3사건 생존자의 진상 규명을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과 좋은 기회로 이어지면서 2016년 피해자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났다. 1년 정도 준비하는 2017년 4월 처음 4·3사건 군사 재판 피해자의 재심 청구를 신청하고 2019년 1월 공소 기각 판결을 받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임재성 변호사가 재심을 선택한 이유는 이들의 구제를 위한 방법이 재심뿐이었기 때문이었다. 군사재판 피해 생존자들은 제대로 된 재판을 간절히 원했다. 잘 될 거라는 확신도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그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4·3사건과 관련해 1년여 동안 조사를 하던 중 변호인단은 영구보존기록물인 판결문이 없다는 점이 오히려 당시의 불법성을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생존자들의 증언에 집중했다. 재심을 청구한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당시 내용을 법정에서 증언한다면 이것이 지금 사법절차에서 낼 수 있는 최선의 증거라면 이 절차라도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군사재판에서는 아무도 이들에게 이름도 죄도 묻지 않고 선고했지만 재심 법정에서 법원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많은 질문을 했다. 국가를 대신해 피해자에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그 과정을 보면서 그는 재판 결과와 상관없이 피해자의 한을 푸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다행히 공소기각 절차 자체가 위법하다는 이 사건의 본질과 가장 잘 맞는 판결이 나왔다. 아쉬운 점은 통상 재심보다 일찍 좋은 결정이 났음에도 피해자 전원이 그 결과를 보지 못했다는 점이다. 18명의 피해자로 시작된 재판은 현재 12명만 남아 있다. 2017년이 아마 이 절차를 통해 피해자들이 직접 나서서 얘기할 수 있었던 마지막이었을 거예요. 좀 더 일찍 이런 구제를 진행했다면 더 많은 피해자들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그게 아직 조금 아쉽습니다.

오지라퍼의 미덕

돈 안 되는 일만 하느냐는 사람들의 오해가 많지만 그는 과거사 공익업무 비율은 전체에서 20%를 넘지 않는 범위에서 맡으려 한다. 취약계층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다. 제가 생각하는 오지라퍼의 미덕은 멈춰야 할 것 같아요. 특히 변호사로서의 참견은 그 사람의 절차나 인생에 개입해서 저를 믿고 같이 싸우자는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맡은 일부터 잘 마무리하는 게 우선입니다.

최초 재심 공소기각 판결 이후 군사재판을 받은 많은 사람이 재심을 청구했고 2021년 3월에는 300명이 넘는 사람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군사재판보다 불법성이 없다는 이유로 진상조사조차 이뤄지지 않았던 일반재판도 김두환 할아버지 무죄 판결을 시작으로 제주4·3특별법 개정까지 이끌어냈다. 여전히 남아 있는 많은 과제들이 제주 4·3 특별법으로 해소될 것으로 기대하며, 계속해서 피해자를 대변하는 활동을 이어가고자 한다. 평화로운 사회가 되길 바라며

변호사, 사회학자, 평화운동가, 방송인 등 다양한 직함을 가진 그는 평화운동가로 불리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 변호사가 된 이유도 평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최근 그는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사건 피해자를 대리해 국가배상소송이라는 민사소송을 맡았다. 43사건의 경우 사람들의 관심도 높고 국가적인 사과도 이뤄졌지만 안타깝게도 베트남전 민간인 학살사건은 아직 그렇게까지 진행되지 않았다. 70년의 세월이 걸렸지만 4·3사건 피해자들이 소리내어 구제받았듯이 누구나 편하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회가 되길 그는 바란다.

누군가 한 사람만 얘기하고 그 사람 얘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과 갈등이 있으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게 평화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활동은 누구나 동등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싸우고 불편함을 말하고 사과하는 과정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한 사람만 얘기하고 그 사람 얘기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있을 게 아니라 내가 누군가에게 불편과 갈등이 있으면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는 게 평화라고 생각해요. 지금 저의 활동은 누구나 동등한 상태에서 자유롭게 싸우고 불편함을 말하고 사과하는 과정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